Good Old Arsenal

도대체 네가 원하는게 뭐니, 세스크

Louisie 2010. 5. 16. 11:33
어제 세스크 인터뷰 논란이 불거진 초반에만 해도 전 세스크를 믿자고 생각했습니다. "월드컵 전에 내 미래를 결정하고 싶다"는 대목 말고는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챔스 바르셀로나 1차전 후에 정말로 세스크가 주장다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했고, 이제 세스크한테 바르샤보다 아스날이 더 의미있는 클럽이 됐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젠 얼마를 줘도 우리 '주장'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새벽에 하이버리에 켄투리오님이 올리신 스페인어 인터뷰 전문 번역을 보니. 너무나도 쇼킹하네요.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어제 믿어주자고 했던게 무색할 정도로. 이건 세스크의 자책골이네요. 항상 영리하게 바르샤나 아스날이나 둘 다 만족할 그런 답변을 내놓고는 했던 녀석이 이젠 어장관리나 영악함의 수준을 넘어서서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말을 해 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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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투리오님이 퍼가는 걸 금지하셔서 인용을 하며 쓸 수는 없고, 전체적인 인터뷰 내용과 뉘앙스를 보면 이건 "바르샤 나도 정말 가고 싶은데, 아스날과 계약이 되어 있으니까 갈 수 없다." 군요. 아스날이 놔주기만 하면 좋아라 하고 바르샤 갈 기세. 몇몇 분들이 지적하신 것처럼 이미 바르샤와 클럽 차원에서 무슨 말이 오간 것 같다는 낌세도 들고요. 클럽 회장 선거 이미지에 대한 언급도 그렇고. 세스크가 바르샤에 강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거 팬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바르샤가 내 드림 클럽"이라고 얘기하는 건 이젠 그러려니 한단 말입니다. 근데 이제는 마치 아스날과 계약신분이라 갈 수 없는 내 처지, 이런 느낌이 들어 정말 열불터지네요. 대놓고 아스날보다 바르샤가 더 뛰기 좋은 팀이라고 하는데 뭘 더 어쩌란 말입니까.

사실 이 인터뷰는 이제 더이상 '바르샤로 간다 안 간다' '이적 할거다 말거다' 하는 수준이 아니에요. 그걸 넘어서서 주장으로서 아스날이란 구단의 위상과 자존감을 다 깎아내리는 거라고요. 세스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죠. 난 솔직했다고. 솔직함이 언제나 미덕입니까? 주장자리에 있으면, 아스날이라는 클럽의 정신적 지주라는 자리에 있으면, 대외적인 언행에 신경을 쓰고 자부심을 가져야지. 바르샤에는 여기(아스날)보다 훌륭한 선수가 많으니까 더 잘할 것 같다는 그런 말을 하면 도대체 팬들은 어디서 자부심을 찾아야 하나요? 안 그래도 많은 아스날 팬들은 바르샤와 얽힌 여러 문제 때문에 열등감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바르샤가 우리보다 더 빅 클럽이라서 여기 있는게 싫으면 가라 그래요 그럼. 자기가 어디 바르샤에서 지금 주전 바로 할 수 있는지 보자고.

바르샤에 대한 예의 운운하는 건 뭡니까?-_- 바르샤는 언제 우리한테 예의 차려 줬나요? 시도때도 없이 선수 흔들어, 무개념한 구단 관계자나 선수들이 --전 펩이 그렇게 말하는건 못봤네요-- DNA 개드립쳐. 세스크에겐 바르샤 DNA가 있다, 세스도 바르샤에서 더 뛰고 싶을 거다, 여기가 더 편하게 뛸 수 있을거다. 그 말을 할때마다 코웃음과 비웃음으로 대응해왔던 팬들이죠. 근데 그 말을 그대로 주장이란 얘가 해 버리네요? 정말로 거기서 뛰는게 더 편하다네? 세상의 어느 주장이 벌건 대낮에 전세계사람 다 들으라고 "여기보다 저기서 뛰면 내가 더 잘할 거 같아"라고 한답니까. (쓰면서 더 열불 터지네-_-;) 뭐 이건 대놓고 인증 까자는 거죠. 그래 너 바르샤 DNA 정말 있구나. 그게 개드립이 아니라 진짜였다고. 월드컵에 가서 바르샤 애들이랑 뛰게 되니 참 좋겠다, 응?

아스날에서 떠난다면 확실히 바르샤로 가기 위해서라는 말에 박수가 나오는 건 또 뭐야. 아 그래 까탈루냐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우리 다시는 까탈루냐 출신은 사지 말죠.

참 이해가 안갑니다. 세스크가 바보도 아니고, 스페인 어딘가에서 했던 스페인어 인터뷰가 잉글랜드로 흘러들어가지 않는다거나 전세계 구너들이 모를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텐데 말이죠. 다 들으라고 한 말이나 마찬가진데, 참 과도하게 솔직했군요. 바르셀로나전 이후에 세스에게 들었던 온갖 감동이 이렇게 한꺼번에 박살날 수도 있다니, 참 세느님. 대단하십니다.

실망스럽고 분통 터집니다. 바르샤로 가네마네를 떠나서 주장이란 애가 어떻게 팬들의 기대와 자존심, 구단의 아이덴티티에 먹칠을 할 수 있는지. 징계감이죠 솔직히. 얼마전에 아르샤빈이 언젠가는 바르샤~ 이 말 했다고 언론한테 두들겨 맞고, 팬들한테 까이고 --저도 엄청 비판했습니다-- 벵거한테도 한 소리 듣고 그랬죠. 세스는 더 심한 행동 한 겁니다 지금. 이정도쯤 되면 갈라스가 주장완장 달고 선수들 깠던 거랑 크게 다를 것도 못 느끼겠어요.

하지만 이번 여름에 이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요. 벵거가 팔지도 않을거 같고요. 문제가 계속 이런식으로 불거진다면 몰라도, 벵거부터 나서서 진화할거 같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세스가 이제 무슨 말을 해도 믿고 싶을 것 같지 않다는거죠. 지금 당장은, 세스를 보고 "주장!!" 하는 느낌도 안 들거 같네요.

도대체 니가 원하는게 뭐니, 세스크 파브레가스.

정말 여기에 있는게 부담이 되고 즐겁지 않고 트로피를 못 따서 힘만 들고 짜증만 나고 여기엔 월클도 얼마 없고 그래서 저쪽 팀을 보면서 '열폭'하고 거기에 가서 '편하게' 뛰고 싶다면. 아무런 아픔도 안 느끼면서 보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