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Old Arsenal

[EPL 13R] 실망이다.

Louisie 2008. 11. 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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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Barclays Premier League
Arsenal 0 - 2 Aston Villa

Goals: Clichy 70 og, Agbonlahor 80.
Booked: Denilson, Fabregas.
Att: 60,047

Arsenal: Almunia, Sagna (Toure 71), Gallas, Silvestre, Clichy, Walcott, Fabregas, Denilson, Nasri, Diaby (Adebayor 61), Bendtner (Vela 68). / Subs Not Used: Fabianski, Ramsey, Song Billong, Djourou.


시즌 4패째. 이 빌라전이 에미레이츠에서 보는 10번째 경기였는데. 후새드. 경기 끝나고 나서 든 감정은, 아니 경기 내내 든 감정은 '실망'이었다. 헐 시티한테 졌을 때 짜증과 쇼크에 북받혀 나던 눈물도 안 나고 스토크 시티한테 졌을 때 들던 절망감도 안 들고 다 이긴 경기를 막판 6분동안 말아먹었던 스퍼스전때 들던 공허함도 아니다. 우리 팀에게 대단히 실망해 버렸다. 팀이 위기감을 느껴야 할 때는 서포터들이 짜증을 낼 때도, 눈물을 흘릴 때도 아니다. 서포터들이 실망감을 표출하기 시작할때 팀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또 그래야 한다. 80분에 아그봉라호에게 두 번째 골을 먹힌 이후 홈 관중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고 해도 집에 가는게 아니라 밖에 있는 티비로 경기를 계속 보겠지만, 난 이제까지 한 번도 에미레이츠에서 우리 팬들이 경기가 끝나기 전에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모두 무척이나 실망한 것이다. 무력한 팀의 모습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팀의 모습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압도해 보지 못하는 팀의 모습에. 주위에서 이 스코어를 역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부터 포함해서. 실망이다. 팀 자체에게, 선수들에게, 벵거에게.

아스톤 빌라는 좋은 팀이다. 내 블로그에 자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난 빌라를 꽤나 좋아한다. 그들이 잘 해서 언젠가는 빅4 안에 진입하기를 바라고, 마틴 오닐은 명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빌라를 상대로 압도하고 이기기란 사실상 어렵다. 최근 빌라가 2연패를 기록하면서 하강세를 타고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쉽게 볼 팀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난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누가 그랬을까. 경기 전에 빌라 팬들 포럼을 슬쩍 보고 갔는데 그네들도 이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더라. 비기면 비겼지. 하지만 우린 졌다. 패배 원인? 깊게 볼 것도 없다. 이걸 보는데 축구를 보는 엄청난 식견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린 미드필드 싸움에서 완전히 졌으며, 수비는 빌라가 더 강했다. 그게 전부다.

카류가 부상 때문에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브라보를 외쳤더니 공격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아그봉라호와 애쉴리 영의 기막힌 스피드를 이용한 역습 작전. 양 팀 모두 4-5-1을 들고 나왔는데 빌라의 [영 - 베리 - 페트로프 - 시드웰 - 밀너]로 이어지는 잉글리쉬 미드필드는 (페트로프를 제외하고 모두 잉글리쉬다.) 쫀쫀하게 우리를 압박했다. 반면 우리는 패스미스 남발에 호흡도 안 맞고 원톱의 벤트너와 연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반면 빌라의 원톱이었던 아그봉라호는 거의 두 골이나 기록했고. 오늘 잘한 선수는 정말 한 명도 없다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벤트너가 제일 최악이었다. 맨유전에서 보였던 문제점이 오늘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나 버렸다. 맨유전에서 벤트너가 너무 사이드쪽으로 빠져서 거의 4-6-0 처럼 되어버리는 걸 개탄(?)했었는데 오늘은 이건 뭐.. 벤트너가 원톱형 스트라이커는 아니라는 걸 감안해도 참아주기가 어렵다. 포메이션 다 무너뜨리고, 템포 잡아먹고, 미드필드에서 패스를 찔러줘도 아무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받을 사람이 없고, 얜 대체 어디 간겅미? 그나마 벤트너의 헤더를 믿고 크로스를 올려 봐도 빌라의 중앙수비 라인은 제공권이 뛰어나니 무용지물이었다. 벤트너 교체될 때 관중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나왔다. 벤트너가 잘해서였나고? 그럴 리가 없지. 벤트너가 교체 아웃된다는 사실이 기뻐서였다. 좀 가혹하긴 했으나 오늘의 벤트너에게는 측은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야망? 좋다 그거다. 그럼 증명을 하라고. 데발이가 들어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슈팅 하나 못해봤다는 것은 벤트너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뼈저리게 보여주는 것이다.

미드필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엉망. 옐로 다섯 장 채워서 다음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 결장하게 되는 세스크는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좀 쉬면 폼이 돌아오려나? 패스 미스 남발 심각하다. 오늘 그나마 미드필드에서 잘한게 데닐손이니 말 다 했지.. 오늘 그래도 공 뺏고 다시 이어주고 하는건 데닐손이었다. 전후반에 걸쳐 테오가 좀 뭔가 보여주긴 했지만 그 역시 수비수를 뚫고 나가는게 전부. 마무리는 도망가고 없다.

사실 라일리가 좀 병신짓하긴 했다. 첫번째 골에서는 사냐가 드러누운 걸 보고 경기를 멈춰야 했고 두번째 골에서는 우리 프리킥 얻어야 할 상황이었다. 이거 말고도 판정 이상했던 거 많았다. 하지만 라일리가 얼마나 개색히인가 하는 논쟁은 집어치워놓고 (어차피 프리미어쉽 팬들은 얘 개색히인거 다 아니까 논쟁도 필요 없겠지만.) 오늘은 우리가 무지하게 못했고 빌라가 좀 잘했다. 패배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하나도 없다.

실망이다. 대체 지난 맨유전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타임즈지의 축구 수석 기자가 지난주 맨유전 승리 이후 '이 승리로 인해 아스날은 앞으로 더 답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라고 썼었는데, 그게 사실이다. 비록 맨유전을 이겼으나 그걸 지속해나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팀은 정말 학습효과가 없는 것인지. 난 이제 맨유전을 어떻게 이겼는지 신기해질 지경이다. 바운스백이란 말을 하기도 지겹다. 언제까지 이런 '패배 - 승리 - 패배 - 승리'라는 지겨운 시계추질을 반복해야 하는가?

우린 재능있는 팀이다. 하지만 재능만 갖고서는 리그를 우승할 수 없다. 우리 팀에는 그레이트한 포텐셜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이지 '포텐셜'이 아니란 말이다. 벵거가 미래를 내다보며 그가 떠난 후에도 계속 발전할 아스날을 건설하고 있는 것에는 하등 불만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현재를 시궁창으로 만드는 것에는 불만이 있다. 잘 되는 날 우리는 좋은 축구를 보여주고 멋지게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잘 되는 날로만 리그를 우승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4년 연속으로 시즌을 빈손으로 마치지 않으려면 '지속성'이 필요하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는 또다른 무관의 시즌이 기다릴 뿐이다. 아니 트로피는 두말 할 것 없고 빌라와 4위 싸움을 해야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건, 아니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건, 바로 벵거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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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게 다 로빈 때문임. 이놈이 출장정지만 안 당했어도 빌라전 이따위는 아니었을 거다. 지난 맨유전보다 오늘 경기가 더 로빈이 급한 경기였다. -_-

덧2. 지난번에 키언옹을 만난 데 이어 오늘은 경기 시작 전에 닉 혼비를 만났다. 아덕후의 선봉장, 피버 피치의 작가 및 영국 대중 소설를 대표하는 작가, 내가 숭배하는 나의 아이돌 닉 혼비를! 꺄오! 경기 시작 전에 아스날 멤버쉽 회원증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유명한 펍에 갔었는데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가 혼비씨였다.. 우훗. 사인 받았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를 눈 앞에서 보니 무척 떨리더라 ㅠ.ㅠ 으헝 ㅠ.ㅠ 혼비씨도 만나고 운 좋네, 오늘 이기는건가~ 했더니만 이것들아.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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