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축배를 들려고 사뒀던 스타우트 흑맥주가 순식간에 패배의 씁쓰름한 한 잔으로 변해 버렸군요. 추가시간이 적용되는 때부터 계속 울었던 것 같습니다.. 슬퍼서 운게 아니라 분노와 속상함의 눈물. 역전패 당한 데 대한 분노, 그리고 아마도 이제 현실적으로 리그 우승이 우리 손 안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아서였겠지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축구판에서 우리가 남은 경기를 미친듯이 잘하고 맨유랑 첼시가 몇 경기 정도 삽을 퍼서 아스날이 리그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2달 전, 아니 찾아보니까 2달 전도 아니네요. 너무 오랫동안 리그에서 승리가 없어서 우리가 리그 톱이던 때가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집니다-_- 6주 전만 해도 맨유와 5점차로 1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그 후 6주 동안 맨유는 다 이기고 우린 4무 1패군요. 누구 탓할 거 없이 우리 자신의 잘못이라는 게 더 짜증납니다. 정말 갖은 시험대를 다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맨유와 6점 차로 3위라니.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네요. 게다가 오늘 첼시 원정은 우리가 경기 면에서 밀렸기 때문에 더 열받고.
전반 끝날 때만 해도 지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결정력이 좀 부족하고 세스가 미들에서 자주 막히긴 했으나, 드록바가 찬스를 잡는 게 예전같지가 않았고 우리가 셋피스에서 선제골을 넣으면서는 이길 것도 같았죠. 특히나 사냐는 이게 아스날에서의 첫 골..ㅠ.ㅠ 너무 감격해서 가슴이 막 터질거 같았는데 어째 그 감동과 감격이 10분을 못가냐고요. 70분에 아넬카, 벨레티가 함께 교체되어서 들어왔는데 그 시점부터 우리가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사냐가 발목이 돌아가면서 아웃되고 에부에가 그 자리로 들어가고, 디아비 들어와서 로빈 자리에 세우고 테오가 라이트윙으로. 어째서 그 시점에 디아비를 넣은 건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벤치 보니 넣을 만한 선수도 없더군요-_-; 아님 이것도 벵거식 잠그기 중에 하나이던지. 왓에버. 첼시는 아넬카-드록바 투톱으로 전향한 다음에 대신 에씨앙이 마켈렐레 대신 미들로 올라왔습니다. 여기부터 꼬이기 시작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첼시의 교체 전략이 더 먹혀들어갔다는 거죠.
동점골이 들어간 이후에는 솔직히 별 힘도 써보지 못했습니다. 미들에서 밀리니 답이 안나오더군요. 그렇다고 우리가 답이 안나오면 캐리어 가야 하는 것처럼(-.-) 오늘 크레이지 모드로 터져준 선수도 없었고 말입니다. 나참 대체 밀란전은 어떻게 이겼던 거야;; 데발이는 오늘 전략적으로 고립되어 버렸고, 미들에서 연계 플레이가 잘 안되니까 교체로 들어온 테오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습니다. 드록바의 두번째 골이 터진 다음엔.. 생각도 하기 싫네요. 그 이후로는 제대로 만들어낸 장면이 하나 정도밖에 없었을걸요.
솔직히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길 만했다고 보이지 않으니 제대로 더 좌절감 들고 실망감 드는 겁니다. 최근 연속 4무재배를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팀이 조금씩 하락세에 있었는데, 여기서 바운스백 하길 바랬더만 완전 바닥을 쳐 버리는군요. 원래 바닥을 치고 난 다음에는 다시 올라가게 되어 있게 마련이라지만, 다음 경기는 볼튼전에 그 다음은 리버풀 3연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너무 우울하네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기대하는게 서포터의 자세라지만 오늘은 솔직히 많이 씁쓸하고 힘듭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어요.
포기.. 라고 말하기는 솔직히 이르지만, 이젠 기대를 조금씩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며칠 전에 데스크톱에서 뭣좀 찾다가 앙리 이적 후에 메모장에 써둔 글을 발견했는데, 그때 온갖 암울한 예측을 하던 것에 비하면 타이틀 경쟁에도 뛰어들고 밀란을 이기고 챔스 8강에 오른 지금은 거의 뭐 천국이죠. 온갖 언론들과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리그 2/3까지 정말 잘해줬던 우리 선수들인데.. 마무리까지 최고로 하기에는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아직은요. 물론 아직 챔스가 남아 있긴 하지만. 리버풀이 어떻게 리그 5위 하면서 챔스 우승 했는지 비법을 좀 묻고 싶.. 근데 그 리버풀이 바로 다음 상대구나. 하하하하. -_-
아무튼 선수들이 너무 풀죽지는 않았음 합니다. 지난 시즌에 비하면 여전히 동기 부여가 될 것들은 남아 있잖아요. 이제 서포터들 희망고문은 그만 시키고, 제발 멋진 모습으로 바운스백 하는 모습좀 보여줬으면 하네요. 그래야 좀 덜 속상하고 리버풀 3연전에 앞서 마음 진정이라도 하지. 이럴때는 축구팬이 아닌 분들이 부럽다니까요. 이 스트레스를 어쩌면 좋아.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라면, 아무리 그 이야기가 마음 아프고 괴롭더라도 어쨌든 간에 픽션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축구는 픽션이 아니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팀에게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그리고 그 팀을 사랑하는 내 자신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ㅠㅠㅠㅠㅠ
+ 보기 괴롭지만 현실을 직시하자는 측면에서-_- 리그 테이블 보며 즐거워하던 것도 다 옛날이구나. 아, 옛날이여-_- 맨유v리버풀 경기는 보긴 봤는데 말하고 싶지도 않네요ㅠㅠㅠㅠ 우리팀 경기도 아닌데 보면서 완전 울화통 터져서.. 게다가 이쪽도 리버풀이 맨유에 비해 경기를 못하고 졌기 때문에 더 열받OTL 차라리 다음이 국대주간인게 고마울 지경.
(추가)
* 경기 내내 로빈이가 심하게 미들까지 내려온다고 생각하면서 봤는데, 그게 미들로 계속 내려오는게 아니라 원래 미들이었-_-;; 아주 오랜만에 4-5-1 레프트윙으로 뛰었네요. 아 니 대 체 왜 로 빈 을 왼 쪽 에 박 아 둔 건 데!!!! 이해가 안갑니다. (두두마저 왼쪽 윙 자리에 놓던 분한테 뭘 묻겠냐만은..) 와이드하게 공간을 이용하겠다던 인터뷰는 이걸 얘기하는 거였나요. MOTD에는 아예 흘렙이 데발이랑 같이 투톱 선걸로 나오더군요-_-; 흘렙이 처진 스트라이커로.. 사실 비슷했죠. 근데 전에도 말한 거지만 흘렙이 섀도우로 서는 4-5-1은 흘렙의 컨디션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봐서요. 데발이도, 로빈도 원톱에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아래 흘렙이 흘레캄프 모드가 나와 주시면 잘할 수 있는거고, 그게 아니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흘렙의 컨디션 난조는 너무 쌓여서 이젠 말하면 입아프고. 로빈은 지난 경기보다 좋아지긴 했으나 슈팅 폼을 보니 아직도 퍼펙트는 아니고. 근데 또 왼쪽이여서 데발이는 고립되고. 결론적으로 제대로 돌아간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죠.. 지난 경기서 로빈과 흘렙의 행동반경이 좀 겹치는 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신에 로빈을 왼쪽으로 돌리고 흘렙을 섀도우에 놓겠다는 벵거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_-
로빈은 시야 좋았고, 패스 좋았고, 내주는 움직임도 괜찮았습니다. 기대해봐도 되겠다 싶었죠. 후반 중반부터는 매치핏이 덜 되어서 페이스가 떨어졌지만 전체적으로 경기 중에 사라지는 일도 없었구요.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결국 로빈 윙이 데발이의 고립을 불러왔고, 경기 내내 데발이는 한게 하나도 없고(정말로 전 지금도 데발이가 경기 내내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음) 로빈은 왼쪽에서 공만 연결해 주다가 끝난게 되는 겁니다. 2번의 좋은 슈팅 찬스도 날려먹고요. 솔직히 로빈의 팬으로서, 복귀한 후 이런 빅 매치에서 한건 해주길 바랬는데.. 역시 몸이 덜 따라주는 건지.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던 건지. 아쉽고 안타깝고 마음 아픕니다 ㅠ.ㅠ
미들에서는 첼시가 미들에서부터 촘촘하게 배치를 하니까 우린 패스를 주고 싶어도 줄 공간이 없고, 흘렙은 무리하게 파고 들어가고, 아니면 흘렙이나 세스가 공 받고 달리기 시작하면 양쪽에서 동료들이 달려와 받아줘야 되는데 그러질 못해서 결국은 미들에서 이리저리 횡패스로 공 돌리다 끝나고. 아니면 카르발료가 달려와 걷어내던지-_- 답답합니다 정말.. 전진을 제대로 못하죠. 그렇다고 롱볼을 할 계제가 되나. 데발이는 수비를 끌고 다닐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긴 공간에 로빈이가 들어와 슈팅을 날릴 수 있는건데. 좀 왜 그랬나요 벵거.. 정말 로사만 있었어도 흘렙 컨디션 난조가 바닥까지 가진 않았을거란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찹니다. 왓더OTL
** 정말 웃긴게.. 그랜트 요즘 교체 이상하게 한다고 말이 많았는데 어째서 하필이면 우리랑 할 때 딱 교체가 맞아들어가는 겁니까. 드록바는 왜 갑자기 2골이나 처넣는 겁니까.
*** 드록바 막으려고 내보낸 뚜레-갈라스가 결과적으로 드록바에게 졌군요-___- 솔리드하게 하는 것 같길래 안심했는데 결국 둘이 돌아가면서 마킹 실패를..orz 근데 드록바의 첫번째 골은 맨 첫 상황에서 옵사이드 아니었나요-.-;; 람파드한테서 패스 보내기 전에요.
하도 답답해서 MOTD 보고 나서 좀 더 덧붙였습니다. MOTD는 우리에 대한 얘기보단 첼시에 대한 칭찬이 더 많으니 그냥 안 보셔도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