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Old Arsenal

[EPL 36R] 실패.

Louisie 2009. 5. 11.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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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clays Premier League
Arsenal 1 - 4 Chelsea
Bendtner 70. Alex 28, Anelka 39, Toure 49 (og), Malouda 86.


한 주 동안 홈에서 허용한 골이 7골, 득점은 단 2골. 그 7골을 내어준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챔피언스 리그 4강 탈락과 리그 4위 확정. 아스날 팬으로 살면서 이보다 더 나쁜 한 주는 얼마 없었던 것 같다. 그 패배가 단순히 골 많이 먹혔다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아슨 벵거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확인 사살해 주는, 마치 사형 선고와도 같았던 패배였기 때문에 그 비극은 더해졌다. 이번 시즌에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3-0으로 처절하게 패배했을 때 나는 벵거볼과 그의 이상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 어찌어찌해서 다시 살아나, 세스크/데발이 아웃을 1월에 로빈이 폭발해 준 것으로 버티고, 로빈 방전 후에는 아르샤빈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나서 우리를 먹여 살리며 겨우 여기까지 목숨을 연명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연명'일 뿐이었다. '부활'이 아니라.

이렇게 어린 스쿼드를 가지고 리그 4위, 챔스 4강, FA컵 4강까지 간 것은 나름 괜찮은 업적 아니냐고 벵거는 말한다. 그래, 가끔 보면 중위권에서 뛰어야 할 것 같은 몇몇 애들을 갖고서도 여기까지 온 건 나쁘지 않지. 하지만 바꾸어서 말하면 여기까지가 바로 이 팀의 한계라는 거다. 여기까지 온 것도 용하지.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 이 스쿼드만 온전히 지켜서는 다음 시즌에 뭐든지라도 우승에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칼링컵도 0607 이후로는...-_-)

아이 러브 아스날 리본을 떼 버리고 근조 리본이라도 달아야 하나. 잠시 이번 시즌에는 무관을 끝낼 수도 있겠다는 단꿈에 취해서 헤롱거렸던 일부 팬들 --나도 그중에 하나다. 서포터라면 일단 꿈을 꿔보는 것은 왜 못하겠는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망상이라서 그렇지--은 현실로 되돌아왔고, 마주한 현실은 "애들로는 아무것도 우승할 수 없다"는 알란 한슨의 비아냥, 그러나 진실이 섞인 비아냥이다.

벵거가 어째서 이런 원대한(?)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에미레이츠 건설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져 어쩔 수 없이 영입 자금을 줄이고 유스 정책을 고수하게 되어야 했다는 건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유스에만' 투자하게 되는 것이 되어버리면 안 되잖아? 벵거의 이상, 어린 나이때부터 함께 플레이 하고 함께 자라나게 해 몇 년 후 성숙해졌을 때 최고의 팀을 이룩한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 도대체 몇 년을 더 감내하고 인내해야 하는가? 이제 할 만큼 했다. 벵거의 이상도 실험도, 한 쪽 귀를 막고 한 쪽 눈을 감은 채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거다.

어떻게든, 무조건, 변화는 이루어져야 한다. 벵거를 보드진이 갈아치울리는 만무하며, 벵거가 제 발로 걸어나갈 리도 만무하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1년이 남았다. 그 1년동안 한번 더 팀을 쳇바퀴 돌리지 않으려면 오판과 실수를 인정하고 단꿈에서 빠져나와 주셔야 한다.

어제 경기도 어째 보면 참 언럭키 했다고 해줄 수 있다. 처음 20분 동안 우리는 꽤 조직적인 것처럼 보였고, 패스웍은 괜찮게 흘러갔으며 맨유전의 충격이 선수들을 옭아매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몰아부치면서도 한 골도 못 넣으면 바로 응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넣을 골을 못 넣었다면 되돌아오는 것은 실점이지. 그리고 우리 팀의 특성상 셋피스와 중거리슛에 연속으로 얻어맞고 나자 애들은 경기를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언럭키'가 끼여들 여지가 없다. 셋피스에서 프리헤더를 허용하는게 언럭키인가? 포백 보호를 아무도 안해줘서 중앙에 공간이 뻥뻥 비어버리는 바람에 그 사이로 중거리 슈팅이 들어간 것이 언럭키인가? 수비수들끼리 사인이 안 맞아 자책골을 넣은게 언럭키인가? 아니지. 그게 언럭키라면 세상 모든 팀은 언럭키해서 지는거다.

MOTD 분석을 보니 참 기도 안 차더군. 딕슨옹과 한슨 해설이었는데, 아스날이 지면 날 선 목소리로 비판하던 딕슨옹도 이 날만큼은 기운이 없어 보였다. 포백 라인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아스날, 중원에서 아무도 공과 선수를 악착같이 따라붙지 않는 아스날. 그 분석을 보고 있으려니 한심하고, 쪽팔리고, 슬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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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서포터들에게 일말의 희망마저 주지 않는 이놈들이.
다음 경기가 OT 원정인데 여기에서 설욕을 하리라는 기대는 고사하고 몇 골 차로 지게 될까, 이딴 걱정이나 하게 만드는 이놈들이. 다행이 리버풀이 웨햄전을 이겨준 덕에 우리가 37라운드 맨유전에서 가드 오브 오너를 하며 박수쳐줄 일은 없게 되었으나 우승확정 경기를 해줄 공산은 여전히 남아 있.. 아니 사실 매우 크다. 홈에서도 이렇게 처발리는데 OT에서 뭘 더 어찌 하리오? 아르샤빈이 다섯 골 넣어주면 또 몰라. 아 그러면 또 다섯 골 먹히겠지?
"확실히 우리는 여름에 스쿼드를 강화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두 명의 선수를 영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선수의 크기가 언제나 써야 하는 돈의 크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우리가 사고 싶은 선수를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필요한 돈을 쓸 것입니다."
벵거, 이제 딱 일 년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오판과 실수와 자만을 하지 않길 바랍니다. 당신은 어떻게든 아스날 역사에 위대한 감독으로 남을 것이지만, 그것이 이런 식으로 얼룩지게 하지 마세요.

* 첼시전 선수들 촌평 - 혹은 욕

파비앙스키: 실점 책임이 있음. 너무 자주 튀어나오는 버릇 고치지 않으면 눈에 찰 일은 없을 듯.

깁스: 뿌듯. 맨유전의 악몽은 다행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듯 하다. 끝까지 경기에 임하려는 태도가 일부 선배 선수들보다 나음. 열심히 했음.

뚜레: 이젠 명이 다한 듯.

실베: 그냥 조크다. 모든 실점 장면에 관여하다니... 시즌 초중반 정도라도 해주지 이게 뭔가. 나가라.

사냐: 벤트너에게 올려준 크로스는 일품이지만 역시 2년차 징크스인지..후우. 이번 시즌 내내 그리 만족스럽지 않음.

쏭: 수비적으로 아주 잘한 건 아니라 보지만 벵거가 교체해 버린 건 크나큰 실수였다. 그나마 쏭마저 빼버리니 중원은 고속도로가 되어버렸다.

디아비: 더 말하기도 입아프다. 나가라. (2) 난 원래 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고, 그냥 그걸 확인해 주고 있을 뿐이다.

세스크: 처음엔 정말 잘했으나, 카드-구두 경고 이후부터 시망. 최근 대패했던 두 경기에서 세스한테 실망한게 없다면 거짓말.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적어도 주장이면 피치 위에서 말을 많이 해 주길. 좀 더 팀원들을 북돋아 주고. 난 세스를 좋아하고 그가 주장인 것이 좋지만,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그도 같이 시망해 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역시 아직 어리다는 것일지. 물론 지난 시즌에 비해 그의 주위에서 뛰는 선수들 레벨에 엄청나게 다운그레이드 됐다는 것도 고려해 주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스리: 그나마 끝까지 사방팔방 뛰어다닌 선수. 참 근성 하나만은 대단하다. 그게 의미없는 달리기일 때가 더 많아서 그렇지.. ㅠㅠ 수미 맡기는 건가 싶어서 식겁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세스랑 둘이 함께 중앙-공격을 도맡았는데, 초반엔 꽤 좋게 흘러갔다. 제대로 된 앵커/홀딩이 있다면야 이 조합은 흥미로울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슬희한테 수비적 센스가 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도 드러났듯이) 제발 슬희 수미 컨버팅은 벵거가 고사해 주길 바란다.

테오: 피니슁 빼고는 다 괜찮았다. 근데, 결정적인 찬스들은 대부분이 테오의 슈팅이었는데 그것들 중 하나도 안 들어갔다는 건 문제 있다. 네가 그래서 중앙공격수가 못되는 거다. 그리고 자신감이 붙은 건 좋은데, 남 줘야 할 때조차 슈팅을 쏴버리는 것은 좀... 물론 소심했던 때보다는 낫다고 보지만. 주위를 보는 눈을 제발 더 기르길.

로빈: 원톱이었는데, 로빈 원톱은 언제나 시망이었지만 어제 경기만큼은 그정도는 아니었다. 떨궈주기, 수비 몰고 다니기 나름 괜찮았다. 슈팅이 부족한 것은 실망스러웠지만.

- 서브

벤트너: 기특한 것. 휀티 사건 잊어주겠다. 타점 높은 헤딩 시원했고 - 어느새 리그 9골, 로빈과 동률 - 열심히도 뛰었다. 서포터들한테서 박수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 경기 후 인터뷰 보니 자기 골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 "솔직히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난 이기고 싶었다." 라고 하는데 참... 에휴..ㅠㅠ

아데발: 다이빙 하고 웃는거 보니 빡ㅋ쳐ㅋ 그거 말고는 한게 없는데? 네가 딴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지. 데발이를 남겨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렇게 할 거면 정말 빨리 나가라. 남은 경기 칼눈 뜨고 지켜본다고 했는데 바로 이래 버리네. 몸값 더 떨어뜨리지 말고 제발... 똑바로 좀 해라. 4-4-2 신봉자 벵거가 이런 빅매치에서 데발이를 부상도 아닌데 벤치에 놓고 벤트너보다 더 늦게 투입한 것은 확실히 께름찍. 벵거가 이미 뭔가 계획하고 있을지도-_-; 데발이한테 더 실망스러운 것은 일 년 동안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빈은 초콜릿 레그였던 오른발을 향상시켰고, 평생 넣지 않던 헤더도 넣게 됐으며, 터치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아데바요르는? 그가 뭘 연습해서 늘린 게 있는가? 밀란 비욘세 어쩌고 할 시간에 자기 발전이나 더 연구해라. 그러고 나서 팀에 대해 실망감을 표출해도 늦지 않다.

데닐손: 있었어?